[세계는 지금] ‘노키아’의 부활, 핀란드 혁신 비결은?
이달 5G 상업용 네트워크 출범… 중국·미국과 경쟁 나서
핀란드의 노키아는 한때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 업체였으나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애플과 삼성, 화웨이 등에 밀려 추락한 바 있다. 그랬던 노키아가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재기에 성공했다.
팀 해트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 인텔리전스 연구소장은 지난해 말 와의 인터뷰에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가 이어지는 지난 15년 동안 크게 잃은 지위를 5G에서 기술적 리더십으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키아의 이러한 노력은 핀란드가 5세대 무선기술을 개발하고 시행하려는 글로벌 경쟁 대열에 오르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키아는 첨단 제조업부터 의료 부문에 이르는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5G의 응용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에 따르면 핀란드는 2019년 1월 상업적인 5G 네트워크 출시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국가 중 하나가 된다.
핀란드의 텔리아 5G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잔 코이스티넨은 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5G는 우리가 과거에 했던 것에 비해 더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하고 분석하고 사용하는 총괄적인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통신사인 텔리아는 지난해 10월 핀란드 정부로부터 5G 상용화 면허를 받은 3개 사업자 중 하나다.
텔리아는 5G 출시와 함께 제공될 데이터의 대량 유입을 처리하기 위해 헬싱키에 핀란드내 최대 규모의 오픈 데이터 센터를 구축했다. 모바일 사용자에 가까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함으로써 사용자들은 5G를 이용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데이터를 수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 등 중국의 5G 개발업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특정 시장 진입 금지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 노키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키아의 주가는 2018년에 거의 30% 상승했으며 이는 ‘5G’라는 두 글자 덕이라고 는 평가했다.
▲세계 1위 휴대전화 기업이었던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스타트업의 부흥을 가져왔다. 노키아는 휴대전화 부문을 매각하고 5G에 역량을 집중해 재기에 성공했다. 사진은 핀란드 에스포의 노키아 본사 풍경. 【AP/뉴시스】
◇노키아의 몰락,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으로… ‘전화위복’ = 2009년, 노키아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에서 38%로 정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해 애플은 처음으로 100달러 이하 가격의 아이폰을 공개하며 스마트폰 대중화의 포문을 열었고,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처음으로 시장에 내보였다. 이후 스마트폰이 피처폰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면서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2004년 핀란드 GDP의 4%를 차지했던 노키아는 2012년 삼성전자에 전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이후 2013년에는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게 된다. 당시 노키아 주가는 최고 전성기였던 2007년에 비해 1할 수준도 되지 못했다.
휴대전화에서 손을 털어낸 노키아는 유무선 통신사업에 집중했다. 휴대전화 등 부진한 사업부문을 다른 기업에 매각한 돈으로 M&A에도 열중했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 노키아 전체 근무자 10만 명 중 4만 명이 R&D에 투입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핀란드 기업들의 혁신은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주도한다. 산학협력과 대학 차원에서의 창업 관련 네트워킹이 활발하고, 이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핀란드의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는 전 세계에서 1위다.
핀란드 전체 생산량의 77%는 중소기업으로부터 나오며, 그 중 50%가 스타트업에서 비롯된다. ‘클래시로얄’로 유명한 게임 스타트업 슈퍼셀의 경우, 설립 4년 만인 2014년에 15억45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원화로는 2조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 사람들은 스타트업 붐의 시작점을 노키아의 몰락에서 찾는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공학 인재들을 대거 구조조정하면서, 그 인재풀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으로 빠졌다. 스타트업 요람의 중심에 선 핀란드 대학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노키아의 부진 이후로 청년실업이 극심해진 가운데 절박하게 미래의 생존전략을 고민했던 것이 지금의 우수한 생태계를 꾸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창의적인 인재를 배양하는 교육으로 평판이 높은 핀란드에서는 향후 10년 안에 인구의 20%가량을 대상으로 4차산업 재교육을 시행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전체 인구의 약 1%를 대상으로 인공지능 관련 교육과 훈련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을 거듭한 끝에 노키아는 2017년 들어 다시 흑자 기업으로 복귀했다. 순매출액은 231억 유로, 순마진율은 39.5%에 달했다. 최근 유력 경쟁업체인 화웨이가 안보 문제로 서방과 일본 시장에서 배척받기 시작하면서 노키아의 앞날은 더욱 밝아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가 5G 상용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핀란드는 중국 및 미국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노키아는 B2C에서 B2B로, 휴대전화 제조업에서 이동통신 서비스업으로 과감하게 시장을 넘나드는 전략을 통해 재도약에 성공했다.
사실 노키아가 과감한 업종 변환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세기 노키아는 목재와 종이를 다루는 회사였고, 냉전 시대에 핀란드가 공산권과 유럽을 잇는 통로로서 기능하자 케이블과 타이어 등 공업 제품을 소련에 수출했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 질서가 미국과 미국이 마셜 플랜 등으로 각국에 뿌린 자금을 통해 재편되는 가운데, 핀란드는 이처럼 기업들이 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면서 미국의 지원 없이 자립해 고소득 국가로 거듭난 희소사례가 되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