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핵심원자재법(CRMA) 주요 내용과 영향
EU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16일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이하 CRMA) 초안을 발표하고 탄소중립 및 디지털 전환, 우주, 방산 등 전략산업에 필요한 핵심원자재의 역내 공급망 취약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8년 ‘원자재 이니셔티브(Raw Materials Initiative)’로 시작된 EU의 공급망 안정화 정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와 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자국중심주의를 겪으며 그 성격이 바뀌며 주요 정책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특히 핵심원자재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 중국이 빈번하게 자원을 무기화하는 데에 따른 공급망 교란 우려가 이번 초안에 반영되었다. 이와 함께 미국 IRA로 인한 생산시설의 역외이전을 방지하기 위해 EU는 그린딜 산업계획 등 역내 제조업 육성을 위한 산업정책을 본격화하고 있고, 핵심원자재법도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집행위의 규칙 초안은 2030년까지 EU의 연간 전략원자재 수요량 대비 채굴 10%, 제련 및 정제 40%, 재활용 15%까지 역내 생산역량을 확대하는 동시에, 역외 특정국에 대한 전략원자재 수입의존도가 65%를 넘지 않도록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략원자재는 핵심원자재 중에서도 디지털 및 친환경 전환, 우주, 방산 등 네 개의 전략 분야에 필수불가결한 원자재 16종으로, EU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비축하고 공동구매에 나선다. 또한, 역내 원자재 확보에 기여하는 프로젝트를 전략 프로젝트로 지정하고, 인허가 기간 단축, 행정절차 간소화를 통해 신속하게 추진한다. 전략원자재를 사용하여 전략적 기술을 제조하는 EU 역내 대기업은 공급망 자체 감사 수행 후 사내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며, 영구자석이 포함된 제품을 현지 생산·판매 및 EU시장으로 수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부과된다. 추후 EU집행위는 위임법안을 통해 핵심원자재의 환경발자국에 대한 규범을 추가적으로 수립할 예정이다. 이와 같이 원자재의 역내 생산능력을 제고하고 재활용을 확대하는 한편, ‘핵심원자재클럽(Critical Raw Materials Club)’과 같이 환경·노동 등 지속가능성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원자재 공급원을 다양화한다.
동 규칙 초안은 美 IRA와 달리 자국산 사용·조달 요건이나 외국산에 대한 명시적 차별조항을 담지 않았다. EU의 수요에 근거한 역내 공급 목표 및 특정국 의존도 상한선을 제시하는 조항도 개별 기업에 적용되는 규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 초안에서 EU집행위는 원자재 생산 시 환경·노동 규제 등 지속가능성 요건을 준수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바, 향후 입법과정에서 이러한 사회·환경적 영향을 명분으로 한 역내 산업 보호 장치의 도입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 규칙은 전략원자재 16종 중 리튬, 니켈 등 5종을 사용하고, 대EU 수출 비중이 높은 전기차용 배터리 셀 및 소재·부품 제조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우리 배터리 기업은 일찍이 EU 현지에서 생산체제를 구축하여 과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2년 기준 EU는 우리나라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의 38.2%를 차지하는 주요 시장으로, 우리 기업은 앞으로 EU 역내 생산 투자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시점 배터리 전략원자재에 대한 우리 기업의 높은 대중국 의존도는 CRMA 도입 과정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동 규칙 초안은 전략원자재의 원산지 요건을 다루지 않고 있으나 입법 과정에서 보다 강화된 조치가 도입되거나 공급망실사지침 등 다른 법안과 연계하여 규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미 IRA의 영향으로 우리 기업이 주요 원자재 공급망을 기존 중국,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호주, 캐나다, 독일 등으로 분산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동 규칙 초안은 우리 기업과 EU 역내기업을 차별 대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 시장 내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중국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조항 또한 없어 우리 기업에 대한 반사이익은 제한될 수 있다.
동 규칙은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 뿐만 아니라 전기차, 전기모터 사용 제품, 가전, 히트펌프 등 영구자석을 사용하는 주요 수출품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관련 업계는 가치사슬 업스트림 단계에 투입되는 핵심원자재를 선제적으로 점검함으로써 공급망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핵심원자재 소싱 다변화 시에는 수급 안정성 및 조달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체계적인 공급망 전환 전략을 수립해야 하며, 환경·노동 등 공급망 지속가능성 관리 의무가 원자재 생산 단계까지 확장되고 있는 만큼, 생산 전 가치사슬 단계에 걸쳐 ESG 정보 관리 및 공시 체계를 확립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초안 상으로는 우리 기업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조항이 없으나, 향후 EU 내부 협의과정에서 법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다 강화된 조치가 도입되거나 공급망 자체 감사 및 영구자석 관련 정보공개 의무가 부과되는 기업 요건 등 세부내용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동 규칙 뿐 아니라 공급망실사지침,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CTF)에 따른 매칭 보조금 지원 요건, 에코디자인 등 핵심원자재 관련 다른 법안도 함께 검토함으로써 핵심원자재를 둘러싸고 확대되고 있는 공급망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계기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붙임의 원문 보고서 참고>